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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땅은 무궁화의 계절

포토 에세이

by 흙둔지 2020. 8. 19. 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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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4, 54, 56... 그리고 다시 103, 166, 279, 197, 246…. 
조금은 둔감해질 수 있는 숫자의 변화가 이젠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다시 민감하게 매일매일 그 숫자를 바라보게 되니,
참으로 황폐한 하늘 아래 핍진한 날들의 연속이다.
유례없이 긴 장맛비와 물난리까지...
올해는 유난히 우리 곁의 시간이 잔혹하게 흘러가고 있다.
지난 봄부터 애써 견뎌오고, 차근차근 익힌 몸가짐만으로 
이제 겨우 긴 여름 장마 보내며 숨 한 번 내쉬며, 
아주아주 조심스럽게 가을맞이에 나서려는 즈음이었거늘, 
103, 166, 279, 197, 246… 다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숫자들이다.
빼앗긴 봄에 이어 이 여름과 다가오는 가을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거늘... 
점차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아 곤혹 스럽기까지 하다.

그래도 나무는 쉬지않고 바람도 불러오고 꽃도 어김없이 피어낸다. 
이 땅의 여름은 누가 뭐래도 무궁화의 계절이다. 
여름을 알리는 꽃이 여러가지 있다 한들 
대한민국의 팔월을 상징할 수 있는 꽃은 단연코 무궁화다.
팔월의 한반도는 무궁화의 땅이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일으켜 길 나선 사람들의 몸짓에 아랑곳하지않고 
무궁화가 자신의 계절에 알맞춤한 듬직하고 풍성한 몸짓으로 꽃을 피웠다. 
무궁화가 꽃을 피운 건 이미 두 달 쯤 전부터다. 
지금 한창인 무궁화 꽃은 앞으로도 한 달 넘게 
이 땅의 여름을 희고 붉게 밝힐게다.

무궁화 꽃은 아침에 조우해야 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해를 따라 떨어지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새로운 꽃송이가 해를 맞이하며 피어난다. 
아침부터 오전까지가 그래서 무궁화 꽃을 보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른 키 높이 정도 자란 무궁화 한 그루에서는 
대략 하루에 서른에서 마흔 송이 정도의 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여름이 시작되었다고 할 즈음인 칠월쯤부터 
나날이 서른 송이씩 피우기 시작해서 
가을 바람 솔솔 불어올 때까지 거의 백일 동안 피고 진다. 
간단히 계산해 봐도 한 그루에서 
무려 삼천 송이 정도의 꽃을 피어낸다.  

물론 한 계절에 삼천 송이 이상의 꽃을 피우는 나무가 없는 건 아니다. 
봄에 피는 벚나무나 이팝나무의 꽃도 모두 합하면 그 정도는 넘을 것이고, 
낮은키의 나무 가운데에서도 조팝나무 꽃 역시 삼천 송이는 넘는다. 
그러나 무궁화처럼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 가운데에 
그만큼 많은 꽃을 피우는 나무는 많지 않다.

크게 자라지도 않은 채, 제가끔 삼천 송이의 화려한 꽃을 
풍성하게 피우는 무궁화는 그야말로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다. 
끊임없이 바깥으로부터 적지않은 침략 공세를 받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끈질기게 스스로를 굳건하게 지켜온 
우리나라의 [나라꽃]이 무궁화인 것은 참으로 절묘하다. 
일본인 침략자들이 이처럼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무궁화를 
위협으로 받아들일 만도 하다. 
우리 민족의 간단없는 독립 의지를 짓밟기 위한 상징으로 
무궁화를 탄압한 침략자들의 어이없는 폭압이 
그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을게다.

일제 강점기에 침략자들은 무궁화를 탄압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지극히 무지몽매한 일이며, 잔인한 폭력이었다.
무궁화 탄압으로 불리는 폭력 사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를테면 침략자들은 강원도 홍천의 보리울학교에서 
무궁화 8만 그루를 불에 태우고, 
무궁화를 통해 민족 정신을 고취하던 
남궁억 선생을 감옥에 투옥하기도 했다. 
비슷한 일로 이승훈의 오산학교 무궁화 동산도 
불에 태워 없애는 일도 저질렀다. 
또 지도에 무궁화를 그려 넣는 건 물론이고, 
학생의 교복과 모자에도 무궁화를 넣지 못하게 했으며, 
무궁화는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서게 하는 [눈에피꽃]이라거나,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기는 [부스럼꽃]이라는 식으로 
무궁화를 폄하한 거짓정보를 퍼뜨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이 땅의 여름을 화려하게 밝혀주는 꽃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가만히 오래 살펴보면 무궁화 꽃 만큼 아름다운 꽃도 없다. 
가끔은 [나라꽃]이라는 상징이 실제 꽃의 이미지를 앞서는 바람에 
실제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무궁화는 언제라도 우리 곁에서 우리 땅의 여름을 
참으로 아름답고 장한 계절로 이뤄주는 
작지만 크고 위대한 나무다. 

이 땅의 어디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무궁화, 
지금 우리 곁의 무궁화 꽃, 한번 더 바라보아야 할 시기다.
지난 일곱 달……. 그 긴 시간은 어찌 보냈는지 
돌아보기 힘들 만큼 힘겹게 보낸 시절이었다. 
모두가 힘을 모아 겨우겨우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야 할 때이지 싶었는데, 
다시 돌아온 거리두기 2단계 지침 소식이다. 
그저 가볍게 다가오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겠지만, 정말 미뤄둔 일이 너무너무 많기 때문이다.
싱숭생숭하게 맞이하는 아침이다. 
그저 다시 발걸음을 멈추어야 하는 일만은 없기를 간절히 기원할 뿐...
무궁무진하게 피고지는 무궁화 꽃처럼 
모두 건강하고 아름답게 이 여름 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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