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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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라는 이미지에 폐허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흩어지는 가을은
우리에게 고독이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정처 없이 떠도는 낙엽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은
유목민의 내면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주를 모르고 거친 폐허를 낯설어하지 않는다.
바람은 부는데,
폐허 같은 인생길을 어서 다시 떠나라고 등을 미는데,
이 시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분명 가을은,
그리고 가을이라고 쓰고 고독이라고 읽는 유목민들은
이 시를 기꺼이 사랑할 것이다.
사람이 늘 달콤함에만 끌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는 듯 외로운 냄새,
꺼끌거리는 입속의 모래,
씁쓸하고 꺼칠한 표정에도 매혹된다.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 인생 안에 폐허, 후회, 바람 같은 것들이 포함돼 있음을...
그래서 이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저 폐허는 어느 사막에 있는 것도 아니고,
비단 한 시인의 것만도 아님을...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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