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 걷는게 습관이 된지 오래다. 흐르는 물을 따르거나 거스르는 바람의 방향을 살핀다. 나무, 풀, 꽃, 새의 움직임에서 시간의 변화를 본다. 무심히 놓인 돌에 평소 눈에 닿지 않던 시선이 머문다. 단단한 돌 표면을 관찰하다 보면 문득 부드러운 물결처럼 보인다. 손에 잡히지 않던 물살이 잡히는 것 같다. 산책은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한 것인데 가끔씩 몸짓이 무거워질 때도 있다.
할 일도 없이, 목적도 없이, 생각도 없이 터덜터덜 걷다 보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안 들리던 것이 들리곤 한다. 내 쪽에서 풍경 쪽으로 건너가는 것이 있고, 풍경 쪽에서 내 쪽으로 건너오는 것이 있다. 교감이 일어나면서 풍경과 내가 유기적인 한 몸이 된다. 풍경이 내 안에 들어오면서 내가 되고, 내가 풍경 안으로 들어가면서 풍경이 된다.
세잔은 풍경이 아닌, 풍경의 의식을 그린다고 했다. 풍경의 의식? 내가 풍경이 되고, 풍경이 내가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게 아마도 풍경을 앞둔 세잔에게 일어난 일일지도 모른다. 풍경이 자기 속에 품고 있던 다른 세계, 잠재적인 세계, 가능한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는 것인데, 그렇게 나는 평소 보지 못한 것을 볼 수 있고, 듣지 못한 것을 들을 수 있어 걷는게 마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