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은 몇년 전에 찍었던 창덕궁 단풍 사진인데 근래엔 기후변화로 인해 저런 단풍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심지어 지난 해 가을에는 [초록 낙엽]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단풍 빛깔이 채 드러나지 않은 초록 빛 잎사귀가 서둘러 나무에서 떨어지는 상황을 언급한 것이었다.
단풍 빛깔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변하는 게 아니라 기온의 변화를 나무가 알아채면서 차츰 겨울을 채비하며 보여주는 현상이다. 여기서 기온 변화는 단지 하루의 한 순간만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하루의 평균기온을 보아야 한다.
올해도 하루 평균기온만으로 봐서는 아직 나무가 겨울 채비를 서두르지 않을 상황인 셈이다. 그러다가 비 내리고 갑자기 서늘해진 날씨로 인해 지금 나무들은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직 겨울 채비를 채 하지 못했는데, 하루 평균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으니 겨울 채비를 위한 시간이 모자라게 된 셈이다.
이제 나무들은 겨울을 나려면 서둘러야 한다. 단풍은 겨울 채비의 준비 단계다. 나무 안에 든 물이 낮은 기온에 얼지 않도록 미리 덜어내는 과정에서 초록빛 엽록소가 비활성화하면서 잎 안에 든 다른 빛깔들이 겉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모자란다. 빛깔을 올리는 것보다 더 급한 게 줄기 표면 가까이에 있는 물관의 물을 덜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서든 잎을 먼저 떨어뜨려야 한다. 지난 해 가을 ‘초록 낙엽’은 그런 이유에서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곧 겨울이 다가온다.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시간에서 짬을 찾지 못한다면 올 가을에도 나무들은 단풍보다 낙엽을 서둘러 떨구어야 한다. 몸 안에 든 물을 덜어내는 데에 가장 빠른 방법은 잎을 떨구는 것이니까 말이다. 더 심각한 건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흐름은 점점 더 빨라진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면 앞으로 그 동안 우리가 보았던 그 아름답던 단풍을 다시 보기 어렵다는 이야기 아닌가 싶은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미 우리는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은 짧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줄곧 해왔기 때문이다.
단풍 빛깔은 약해졌지만, 나무는 그래도 자손 번식에 머뭇거리지 않고 씨앗을 맺었다. 진화생물학에서 이야기하는 ‘적합성’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이 즈음에 다시 한번 꺼내 들어야 할 개념이다. 나무는 암울한 이 땅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적합도’를 높여 이 땅에 살아갈 방도를 치밀하게 찾아나가는 중이다. 사람도 더 늦기 전에 이 땅에 나무와 더불어 살기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영글어가는 열매와 씨앗을 고맙게 바라보아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