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대법원은 서산 부석사와 일본의 쓰시마 간논지가 소유권을 두고 소송전을 벌인 고려 때의 금동관음보살좌상의 소유자가 간논지라고 최종 판결했다. 최근 약탈된지 647년 만에 서산 부석사에서 100일간 일반 공개 후 5월달에 반환된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330년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 모셔졌다가, 1527년 일본 쓰시마의 간논지에 모셔졌고, 2012년 10월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금동관음보살좌상이 과연 누구의 소유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판결이었다. 약탈 문화재의 소유권이 약탈당한 쪽에 있는지, 아니면 약탈한 쪽에 있는지에 대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이라고 할 만했다.
이 불상의 소유자를 둘러싸고 1심 대전지방법원은 부석사, 2심 대전고등법원과 3심 대법원은 간논지의 손을 들어줬다. 이 세 판결을 종합하면 핵심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이 불상의 원래 소유자는 부석사다. 둘째, 그럼에도 이 불상의 현재 소유자는 간논지다. 얼핏 보면 모순된 이 두 가지 결론은 역사적, 법률적, 정치적, 외교적 관점에서 두루 살핀 뒤 나왔다.
이 불상은 만들어진지 약 200년 뒤인 1527년 일본 쓰시마의 간논지에 홀연히 나타났다. 3심 재판 때 부석사 쪽이 낸 상고 이유서에 그 이유가 잘 설명돼 있다. 이 불상이 모셔진 뒤인 1352~1381년 쓰시마에 본거지를 둔 왜구가 다섯 차례 서산 일대를 약탈했고, 그 와중에 이 불상이 왜구의 지도자인 고노 집안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그 집안의 후손인 고노 모리치카가 1527년 고향인 고즈나에 머물면서 간논지를 창건해 이 불상을 모셨다. 이 불상은 1973년 나가사키현 문화재로 지정됐다.
1980년대에 이 고려 불상의 존재는 국내에 처음 알려졌다. 1996년 부석사 주지 도광이 간논지를 직접 방문했고, 2004년부터 서산 주민과 조계종단을 중심으로 이 불상의 환수를 위해 간논지와 교류를 시작했다.
그런데 2012년 10월 한국인 도둑들이 이 불상을 훔쳐 국내로 들여왔다. 도둑들은 곧 경찰에 잡혔고 정부는 이 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2013년 2월 원래 소유자인 부석사가 이 불상을 일본에 넘겨주지 말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10년에 걸친 소송전이 시작됐다.
2017년 1월 대전지방법원이 내린 1심 판결은 부석사 손을 들어줬다. 이 불상의 결연문에 기록된 ‘서주 부석사’가 현재의 서산 부석사와 같은 절이고, 이 불상은 왜구가 부석사에서 간논지로 비정상적 방법으로 가져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심 재판부는 비정상적으로 가져갔다는 근거로 불상의 몸 안에서 나온 글에 이전 과정이 담기지 않은 점, 이 불상을 소유하고 절을 창건한 사람이 왜구의 지도자였다는 점, 14세기 후반 왜구가 서산을 약탈한 기록이 있는 점, 불상에 화상 흔적이 있고 머리관과 받침이 없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2심과 대법원 판결로 일본 반환이 결정되었다. 2심과 대법원 판결은 과거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에 대한 약탈 주체의 소유권을 모두 인정한 것과 같다. 20년 이상 갖고 있었다는 이유로 소유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지 못하는 문화재의 소유권을 인정한다는게 이해불능이다. 옆집 물건도 훔쳐서 오래 소유하면 내 것이 된다는 야만적 논리나 마찬가지다.
그런 무법천지를 법원이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에 분통이 터진다. 작금에 헌재를 비롯한 판사들의 행태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국민들 불신을 줄일 대책을 판사들이 앞서서 세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대한민국은 정치인들을 비롯해 검사나 판사, 사회의 지도층 모두가 잘먹고 잘살기 위한 기득권이 될려고 그리 발버둥을 치는지 꼴볼견이다. 망국의 길로 접어든 작금의 작태에 분노만 치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