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연 죽음에 대한 생각은 버려야 할까?
톨스토이에 따르면 사람의 삶에는
두가지 서로 다른 상태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채 살아가는 상태,
둘째는 인생의 매시간 자신이 죽음을 향해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상태다.
죽음앞에서 치사스러울 정도로 울며불며 덤비는 건
아마 사람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죽음의 주위는 좀 더 경건하였으면 싶은데 말이다.
지인을 떠나보내는 마음은
지독한 그늘과 상실을 안겨주지만
헤어짐은 또 다른 만남을 의미 한다며
애써 자위하며 슬픔을 삭이곤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우리네 장례식과는 다르게
슬픔이란 찾아 볼 수가 없고 마치 잔치집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을 새가 먹게 하는 조장(鳥葬)을 하는데,
새가 먹고 하늘 높이 올라가면 하늘에 가까워지니까,
죽은 사람의 영혼이 새를 통해 하늘나라에 가기를 바라는 거란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들의 영혼은 새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꽃잎이 떨어지는 건 바람의 심술 때문이 아니다.
져야 할 때를 알고 지는게 꽃의 숙명이니,
바람은 꽃이 혼자 떨어지는 수고를 덜어주었을 뿐이다.
피어날 때를 기다려 꽃망울을 터뜨리고
질 때를 가늠해 지는 꽃이니
어찌 그걸 바람 탓으로 돌리랴...
바람은 불어야 할 때 불고 잠잠해야 할 때 잠잠하다.
세상 만물은 천지의 시각과 그 본성으로 움직인다.
그게 자연의 순리다.
물과 같이 흐르는 순리는
어디 한 군데 빠뜨리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더라고 했던 시인의 마음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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