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을 피해 매일 수천 명의 난민이 서발칸반도를 거쳐 서유럽으로 넘어오고 있었을 때, 헝가리는 펜스를 설치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명했다.
반면에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는 아이패드로 부다페스트에서 고속도로를 따라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으로 걸어가는 수많은 난민 행렬을 보면서 마침내 난민 입국 허용을 발표했다.
메르켈의 이 결정은 그에게 ‘난민의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안긴 인류애적 포용이었지만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으며 유럽에서 극우가 부상하는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다. 그 역시 난민 허용 결정과 그 이후의 파장은 총리직에서 일종의 전환점이었다고 했다.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첫 동독 출신, 첫 이공계 출신 총리로 선출된 메르켈은 독일 경제를 일으켜 세우고 퇴임 직전까지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독일인들은 편안하고 소탈한 그를 ‘무티(mutti·엄마)’라 불렀다. 장장 16년간 총리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16년 재임 기간 내내 파도가 밀려오듯 시련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영국 브렉시트, 난민 사태, 코로나 등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그의 결단을 기다렸다. 독일의 탈원전 정책과 러시아 천연가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퇴임 후에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에너지 대란을 불렀기 때문이다.
물리학도 출신 정치인답게 그는 자신을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가능한 한 항상 객관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스타일이었다. 장점이 단점보다 51:49의 비율로 크면 타협에 나서는 쪽을 택했다. 세상은 흑백인 경우가 드물었다.” 바로 이런 점이 타협과 실용의 리더십을 보인 메르켈이 롱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저러나 왜 한국에는 이런 리더십을 보이는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는지 아쉽다.